- 주일 오후 12시

- 수요일 저녁 7시

- 새벽기도 아침 6시 (화~토)

예배시간
​메일주소

Po Box 44079

Tacoma, WA 98448

​오시는길

1016 112th St S,

Tacoma, WA 98444

(Parkland First Baptist Church)

​연락처

253-590-2710 (교회)

253-324-7092 (담임목사)

  • Grey Facebook Icon

©2018 Copyright The Good Shepherd Church. All Rights Reserved.

4/5/2020

제목: 절대 무너지지 않는 교회


   코로나19 발병 전, 기독교의 교인 수는 이미 매년 5%씩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이미 불씨가 꺼져가고 있었는데, 코로나가 거기다 찬물을 끼얹은 격입니다. 게다가 이단 신천지의 무분별한 포교활동과 몇몇 중대형 교회들의 모임과 주일예배 강행은 더욱 더 교회(신천지는 교회가 아니지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기 위해, 자택에서 온라인 예배를 드리고, 원격 혹은 메일로 헌금을 드리고, 화상으로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될수록, 성도들이 예배를 사모하여 교회로 모이는 열정이 점점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특히, 주일성수가 습관이 된 60대 이상의 기성세대보다, 합리적이고 개인적 성향의 젊은 세대일수록, ‘편한 대로 예배를 드리겠다’는 신앙 습관이 더 빠르게 퍼질 것이라 보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미래는 어둡기만 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럴 때일수록 교회 안에 성도는, 세대를 뛰어넘어, 진짜 혹은 가짜 성도로 구분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13장에, 추수할 마지막 때의 <알곡과 가리지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성도의 진짜와 가짜의 구분을 언급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희어진 들판에 가라지(가짜)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시고, 추수할 알곡(진짜)들을 곳간에 넣어두실 것(마13:30)이라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비록 추수하기 전 들판에 보이는 곡식의 양이 줄더라도, 곧 추수를 마치고 함께 거할 처소에 데려가시기 위해, 알곡과 가라지를 구분하실 것입니다. 지금은 마지막 때이며, 추수할 때입니다. 알곡으로 남은 주님의 교회는 더욱 더 견고해질 것입니다. 알곡의 성도로 남은 교회가, 마16:18의 말씀처럼, 진짜 교회로 남게 될 것입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교회는 절대 무너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내 교회” 즉, 예수님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정체성은 건물에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 소유>에 있습니다. 음부의 권세인 사단도 예수님의 소유된 교회를 어찌할 수 없습니다. 마 16장 18절의 앞부분을 보면, 예수님은 교회를 말씀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랴 하느냐”(15절)고 물으셨습니다. 그 때 시몬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절) 이것이야말로 교회의 고백입니다.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성도들’의 고백 아래, 교회는 세워지고 지켜집니다. 그래서 아무리 어려운 위기가 와도, 알곡으로 구분된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기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세상이 변하고, 삶의 끝이 와도, 예수님을 기다리는 신부들의 교회는 끝까지 남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이 모습은 온 나라와 족속과 문화와 언어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습(계 7:9-10)입니다. 


   저는 우리 선한목자교회 모든 교우들이 이렇게 끝까지 남아있는 성도, 알곡으로 구분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미국의 코로나19의 비상사태가 길어지고 있습니다. 4월이 지나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이전에 없었던 재앙입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닙니다. 또 다른 전염병, 그리고 다른 재앙과 천재지변이 이어질지 모르겠습니다. 그야말로 예수님께서 추수하실 때입니다. 이런 상황일수록 우리의 신앙을 더욱 견고히 하여,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하시어, 우리 모두가 알곡으로 구분되어지길 바랍니다. 


연목사

3/29/2020

제목: 종말은 저주가 아니다!


   인류는 지구 종말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1947년, 인류에게 핵위협 경고를 위해, 핵 과학자들이 미국 시카고 대학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운명의 날” 시계를 고안했고, 그 때 인류의 시간은 ‘23시 53분’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2020년 지금, ‘23시 58분 20초를 가리킨다’고 경고합니다. 2000여 년 전, 예수님은 이미 마태복음 24장에, “세상 끝에” 징조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요즘 신천지와 같은 이단들이 “나는 그리스도라”하여, 종말을 악용하여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전쟁, 기근, 천재지변도 속출하고 있습니다. 특히 세계가 코로나19 창궐로 몸살을 겪고 있습니다. 믿는 자들이 세상에 미움을 받고, 거짓 선지자들이 활기를 치고, 인간이 만든 좌우의 이념 때문에 서로에 대한 배려가 온데간데없고, 사랑이 식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정말, 예수님의 말씀,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계 22:12)처럼 곧 예수님께서 오실 때가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종말을 맞이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두려움과 걱정이 있습니다. 이러한 때, 우리는 종말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필요합니다. 종말은 우리에게 절대 저주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종말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날이 언제일까’에 관심이 있습니다. 언제 올지 모를 종말을 두려워합니다. 한 사이비 단체인 “다미선교회”가 1992년 10월 28일에, ‘지구에 종말이 올 것이다’라는 황당한 주장으로 신도들을 미혹했습니다. 당시 이것은 한국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신도들은 두려운 마음으로 직장도, 가정도, 재산도 포기하고 그 날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종말의 맹목적, 극단적 태도는 올바른 성경의 관점이 아닙니다. 


   우리는 종말을 두려워하기보다, 오게 될 종말을 “올바르게 기다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은 주님을 떠나 타락하였습니다. 이 타락은 계속되어서는 안 됩니다. 끝이 나야합니다. 언제 끝이 날까요? 종말이 와야 끝이 납니다. 그래야 계시록의 저자 사도 요한이 본대로, “새 하늘과 새 땅”(계21:1)이 올 것입니다. 믿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로 타락과 구별된 자들입니다. 심판 받을 자들이 아닙니다. 종말 후 하나님의 함께 할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렇기에, 지금의 마지막 시대 현상은 주님이 곧 오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온다는 신호입니다. 


   우리 크리스챤들은 유월절의 어린 양의 피가 흐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입니다. 그래서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결국 “새 하늘과 새 땅”의 천국이 보장된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계1:6)으로 삼으셨습니다. 이것은 지금의 타락한, 불완전한 삶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불안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참 거룩한 신부입니다. 신랑 되신 예수님을 기쁘게 맞이할 자, 구름타고 오실 주님을 볼 자, 그들이 바로 우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계 1:5b-6)


연목사 on 3/24/2020

3/22/2020

제목: 참된 예배를 사수하라!


   WHO의 “세계적 대유행”(펜데믹, Pandemic)" 선언으로, 세계는 코로나19와 싸우고 있습니다. 진원지인 중국에서 시작되어 우리나라로 확산이 되다가, 이제는 유럽과 중동, 그리고 북, 남미로 퍼져 나가, 그들의 선언처럼, 코로나19는 세계를 점령하고 말았습니다. 세계 어디에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워싱턴 주의 의료진들도 코로나19와 함께 사투를 벌인다고 합니다. 충분치 않은 의료기구 때문에, 그들은 바이러스에 노출된 채로 감당할 수 없는 환자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의료진 가족들은 매일 매일 그들을 출근시킬 때, ‘전쟁터에 무기 없이 군인을 보내야하는 심정’이라고 합니다. 예배공동체인 교회에도 코로나와 ’전쟁을 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종교탄압이다. 교회가 어떻게 예배를 포기할 수 있느냐’는 입장부터, ‘예배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의 안정과 사회적 평화를 지키기 위해, 진정한 삶의 예배를 드리기 위해, 협조하는 조치이다’는 해석으로 나뉘어서 각각의 신앙으로 예배를 사수하고 있습니다. 이 전쟁과 같은 시점에 우리는 다시 한 번 <참된 예배의 정의>를 살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구약의 관점으로 예배의 장소를 묻는 사마리아 여인을 향해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참된 예배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4:23) 


   예수님이 이야기하신 참된 예배는, 첫째, ‘영으로 드리는 예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우리의 영은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영이거나, 혹은 사단에 속한 악한 영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3장부터 4장까지 보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영은 문맥상, 거룩한 영, 거듭난 영입니다. 참된 예배는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소유한 자가 드리는 예배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영으로 예배를 드려야 참된 예배입니다. 만약 우리 속에 서로에 대해 정죄와 미움이 가득하다면 이것은 거룩한 영이 아닙니다. 거룩한 영은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요즘 들어 인터넷상을 보면, 각자 다른 신앙의 모습에 대해 너무 격한 원망과 비판이 오고 갑니다. 무엇이 하나님께 속한 삶인지, 참된 예배를 위해 무엇을 회복해야 할지 깊이 살펴봐야 합니다.


   둘째, 참된 예배는 ‘진리의 예배’입니다. 진리는 곧 예수님이고, 예수님은 곧 말씀입니다. 말씀을 중심으로 예배한다면 그것은 참된 예배입니다. 때로는 예배의 겉모습은 갖춰졌는데 말씀이 빠진 경우가 있습니다. 예배 속에 말씀이 없고, 설교자의 화려한 언변과 음악의 감정적 호소가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예배에서 중요한 것은 화려한 시설도, 음악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예배에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고, 말씀이 중심 되는 것입니다. 잠언 기자는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잠 29:18)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묵시는 곧 계시이며,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우리는 방자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배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말씀입니다. 또한, 말씀이 있다면 우리는 언제라도, 어디라도 예배할 수 있습니다.


   어느 찬양의 가사처럼 하나님 아버지는, “그 한 사람, 그 예배자”를 찾으십니다.(요4:23) 이 전쟁과 같은 시기에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언젠가 한 선교사님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현지인들의 배신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모든 성도들까지 떠나버린 한 선교사님. 이제는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답니다. 그를 위로하기 위해, 한 동역자가 그를 방문하였습니다. “이제 그만 본국으로 돌아가는 게 어떻겠어요?”라는 권면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예배자가 없는 이곳에 예배자를 세우기 위해 왔는데, 아직 아무도 없다고해서 떠날 수는 없습니다. 이곳이 주님오실 때까지 주님을 예배하는 곳이 되도록, 저는 예배자가 될 것입니다!” 


연목사 on 3/22/2020

3/8/2020

목회 칼럼 (2020-10): 코로나19를 위한 기도#2


<코로나 감염 사태를 겪으며 드리는 기도>
-우리를 두려움과 탐욕에서 구하소서-

주님, 우리나라 전국이 코로나19 때문에 심한 두려움에 빠져있습니다.
그 두려움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주님 앞에 무릎 꿇은 이 시간
저보다 더 두려워하고 있을 이들을 위해 먼저 기도합니다.

연로하신 분들을 기억해주십시오. 
건강한 젊은이들보다 더 불안할 것입니다. 
우리 어르신들에게 용기와 평안을 허락하소서.

어린아이들이 있는 가정을 기억해주십시오.
오늘도 환자들을 직접 만나고 있는 의사와 간호사들을 기억해주십시오.
묵묵히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공무원들을 기억해주십시오.

이들 모두에게 하루하루 달라지는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 지혜와 건강을 허락해 주십시오. 

 
두려움도 전파되지만 사랑과 평안도 전파된다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기도와 절제와 평안이
사회에 만연한 불안과 혐오와 두려움을 대체하게 하여주십시오.

한계를 정하지 않고 쓰고 먹는 인간의 탐욕에서 시작된 이번 사태 앞에서
교회가 세상과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게 해주소서.

그동안 교회가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면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이제부터라도 
교회가 해야 할 일과 교회가 하지 않아야 할 일을 
깨닫고 실천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오늘 하루 삶이 탐욕과 두려움을 이기는 삶이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CBSJOY 발췌 on 3/8/2020

1 / 21

Please relo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