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칼럼

6/19/2021

목회 칼럼

제목: Happy Father's Day!


   이번 주일은 아버지날(Father's Day)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이 땅의 아버지와 남편 된 모든 분에게 더욱 풍성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버지날을 맞이하며 가정의 모든 아버지가 살아나기를 전심으로 기도합니다. 가정의 회복은 가장의 역할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요즘 각 가정에서 가장의 역할에 적신호가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가족을 부양해야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집 안은 신경 쓰지 못합니다. 반면에 집 밖에서 일하는 헌신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 때 영적으로 깨어있지 못하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일 때문에 점점 가족들과 멀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교육을 위해 아내와 자녀들을 타국으로 보내고 ‘기러기 아빠’가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왕 보냈으면 가족들이 잘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오히려 오랫동안 가족들과 떨어져 있어 문화와 언어의 벽이 생겨나고 자녀들과 소통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다 같이 이민 온 1.5세와 2세의 가정도 이런 가족들이 많습니다. 참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세상 속 이야기가 아닙니다. 교회 가정 안에 방황하는 사춘기 자녀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세상의 눈을 뜬 자녀들이 부모와 멀어지고, 손대지 말아야 할 것, 영향 받지 말아야 할 것들(마약, 동성애 등)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가정이 역기능 가정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도 타 민족 사회보다 한인 사회는 나은 형편입니다. 하지만 한인 가정에서 자녀들이 빗나가게 되면 더욱 심각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가정의 현주소이고, 앞으로 우리 자녀들이 극복해야 할 과제입니다. 

목회자로서 간절히 드는 생각은 오직 하나입니다. ‘가정이 살아야한다’는 것입니다. 이 시작은 가정을 영적으로 인도하는 남편과 아버지에게 달려있습니다. 아버지날을 맞으며 형제들에게 강력하게 도전하고 싶습니다. 우리 정말 잘 해 봅시다!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을 이루고, 하나님의 성결함으로 가족을 지키고 사랑하며 살아갑시다! 가정의 리더로서 자손들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전하고, 그분의 성품을 따라 살 수 있도록 우리가 먼저 본을 보이고 자식들을 적극적으로 격려합시다! 비록 지금까지의 삶이 부족했다 할지라도, 오늘부터의 삶이 새롭게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 모두는 때가 되면 다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어떻게 살았느냐고 물으실 때, 부끄럽지 않는 거룩한 삶을 살았노라고,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가족을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돌보았노라고 고백합시다! 다시 한 번 이 땅의 남편과 아버지들을 축복합니다. Happy Father's Day!


 - 연태희 목사 6/19/2021 - 

1/24/2021

목회 칼럼

제목: 위로받고 위로하는 우리


   인생을 살아가면서 때로 우리는 답답하고 고통스러운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기대하고 애썼던 일들이 계획대로 해결되지 않을 때 우리에게 찾아오는 불청객이 있습니다. 낙심과 불안입니다. 낙심은, 의욕을 상실하게 하여 밥맛도 없고, 말하기도 싫고, 만사가 다 귀찮아지고, 매사에 소극적, 비관적,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불안은, 마음에 근심, 걱정, 염려,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는 상태로, 사소한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화를 자주 내고, 조급하며 절제하지 못하고, 잠을 잘 자지 못하며, 증세가 더 심하면 우울증으로까지 발전하여 무력감에 빠지며, 자살까지 이르게 됩니다. 통계자료를 보면, 미국에서는 수면제가 1년에 약 700억 알이나 소비된다고 합니다. 하루에도 1,900 만 명이 괴로워하고 불안해하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단은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을 낙심과 불안에 사로잡아 꽁꽁 묶어두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삶에 지속되는 고난과 미래의 불투명함으로 인해 낙심과 불안의 증세는 가질 수 있습니다. 신앙인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때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그들을 위로하되,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지은 죄에 대한 벌도 다 받아 모든 죄를 다 사함을 받았느니라’ (사 40:1, 2)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의 죄 사함과 포로생활이 끝나게 될 것이라는 선언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광야의 고통가운데 있었던 백성들을 위로하라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천지만물의 창조주시요,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분이시며, 우리의 삶을 천국 가는 그 날까지 구체적으로 인도하시며, 삶의 고통가운데 있는 자들을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환란과 슬픔을 만났을 때, 고통과 외로움 가운데 있을 때,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찾아와 위로해 주십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도와주십니다. 우리의 돕는 자, 위로자, 상담자, 변호자 되어주시는 보혜사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심으로 우리와 언제나 함께하시며 인도하고 계십니다.

위로의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만났다면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다른 지체들을 위로하는 것입니다. “상처 입은 치유자”(책 헨리 나우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낙심하고 불안해 할 때, 고통을 당할 때 못 본 척 해서는 안 됩니다. 가족들 중에, 성도들 중에, 내 사랑하는 친구, 이웃들에게, 내가 하나님께 받은 위로로 다른 이들을 위로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위로와 도우심으로 굳건히 세워지고, 그 힘으로 세상에 나아가 담대히 하나님의 위로를 전하는 공동체가 되길 소망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 41:10)


 - 연태희 목사 1/23/2021 - 

1/17/2021

목회 칼럼

제목: 제자훈련 “예수님의 사람”을 마치며


   몇 달 전 담임 목사님으로부터 “예수님의 사람” 제자훈련을 추천해 주셔서 제자훈련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막연히 성경공부의 한 형태로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공부하는 동안 많은 것을 깨닫고 나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인도되는 제자훈련 과정이었는데 모든 단원 주제마다, 그 내용들마다, 다 모두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고 공부하는 순간순간 너무 부끄러울 때가 많았습니다. 특히 12단원의 주제, 전도자의 사명은 저에게 너무나 큰 도전을 준 단원이었습니다. 지금도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는 전도자의 삶이 내게 때때로 너무나 어려운 과제이며, 힘든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친정식구들을 근 30년을 기도하며 전도하고 있는데 이 단원을 공부하면서 많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과연 바르게 쉬지 않고 전도하는가, 내가 삶속에서 예수님을 보여주는가, 정말 내가 모든 일을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있는가? 신실히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변함없이 섬기는가? 정말 내가 천국과 지옥을 온전히 알고 있는가? 그래서 내 가족들이 지옥가지 않게 정말 절실히 매달리는가? 내 선교지는 과연 어디인가?’ 수많은 질문으로 내 머리가 터질 정도로 생각이 많았습니다. ‘전도, 정말 어려운 것인가’에 대해서도  한참을 머뭇거릴 정도로 내용들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이 단원에서 정말 천국과 지옥의 확신을 가졌다면, 질문에 나는 사랑하는 친정식구들을 위해 근 30년을 미지근한 전도의 방법으로 임한 저의 모습을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저는 갈라디아서 2:20 말씀처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그리고 그날로부터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안에 예수님께서 사시는 것이라 그래서 나는 나를 위해 자기 자신을 버리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고백하면서도 늘 영적전쟁에서는 힘들어합니다. 늘 나에게 성령님으로 깨우쳐 주시고 나에게 천국을 그리고 죽음을 바라볼 수 있는 눈과 경험을 주신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합니다. 제자훈련을 받기 전에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면 이제 제자훈련을 마감하면서는 나 자신을 감찰하고 나의 뜻이 아닌 주님의 뜻을 따라 사역하고자 하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제자가 됨을 다시 한 번 깨닫고 내 형편이 좋거나 안 좋거나 항상 하나님 나라를 준비하는 자세로 어린이 사역의 사명을 잘 감당하며 헌신하며 천국의 소망을 이루어 나갈 것입니다.


  또한 영적 전쟁을 준비하고 훈련하는 곳이 교회라는 것도 다시 한 번 느끼며 막연한 건물이 아니라 우리를 다시 재정비시켜줄 귀한 곳 이라는 것도 다시 느낍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 일을 하실 때 제자들을 부르심으로 사역을 시작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임하셨음을 정말 믿을 때 우리의 삶도 변화됩니다. 쉬지 않고 말씀으로 배워가는 과정이 믿음의 성숙의 과정이고 말씀공부를 통해  우리는 계속 성장해 갈 것입니다. 열정을 다해 가르쳐주신 목사님, 그리고 함께 공부한 권사님, 집사님 감사드리며, 이번 교육을 통해 더욱 더 서로를 알고 사랑하게 되었으며 서로의 고백이 성령님을 통해 은혜가 되고 감사가 되고 기도의 응답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이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 김숙희 전도사 1/14/2021 -

1/10/2021

목회 칼럼

제목: 진정한 새해의 다짐


2021년 신축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 한 해 성도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 사업과 사역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넘치길 기도합니다. 새해를 맞이했지만, 작년부터 우리는 피곤하고 지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여전히 방역 지침은 그대로입니다. 우리교회는 괜찮지만, 각 교회마다 공예배로 모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전염 때문에 친교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맞이한 새해는 여전히 하나님이 허락하신 선물입니다. 그렇다면 새해가 진정한 새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새해를 진정한 새해로 보낼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2)

바로 ‘내가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지난해의 어두웠던 세상일을 반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새 다짐, 새 마음, 새 뜻이 우리 인생의 새 역사를 쓰게 합니다. 사실, 우리가 새해라고 말하지만, 어제의 해와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똑같은 해가 그대로 떠올랐을 뿐입니다. 집안의 가구, 내 가족, 내 주변은 변한 것이 없이 그대로입니다. 나를 절망시키는 환경은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주변의 환경이 바뀌어 나를 새롭게 맞아 주는 것도 아닙니다. 지난해 나를 힘들게, 화나게 했던 주변 사람들이 개과천선하여 나를 새롭게 맞아주는 것도 아닙니다. 

새해가 새해 되어야 하는 이유, 새로워져야 하는 이유는, 지난해와 다른 해가 떠올랐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이자, 그것이 구원받은 우리의 모습(고후 5:17)이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우직하게 일하는 소의 해인 신축년입니다. 환경보다 앞서 ‘내가 새로워지는 해’가 되어, 바울처럼 푯대를 향해 나아가길 바랍니다. (빌 3:12-14) 이제 코로나 이후의 새로운 시대(After Corona)가 온다고 합니다. 세상보다 먼저 속히 영적 기지개를 폅시다! 새해동안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아, 어제와 다른 개인, 가정, 그리고 선한목자교회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연목사 1/10/2021 - 

1/3/2021

목회 칼럼

제목: 기도의 사람 조지 뮬러

 영국의 조지 뮬러는 50만 번 기도하고 50만 번 기도 응답을 받은 기도의 용사이다. 그는 인간에게 부탁하지 아니하고 오로지 하나님께만 간구하여 신앙으로 세계에서 첫째 되는 고아원을 세워 일생동안 15만 명의 고아를 길러냈다. 어느 날 고아원에 양식이 떨어졌다. 식당 담당자가 뮬러에게 말했다. “저녁 식사 시간인데 양식이 떨어졌습니다.” 뮬러의 대답은 엉뚱한 것이었다. “염려할 것 없네. 식사 종을 치고 아이들을 식당에 모으게.” 종을 치자 아이들이 우르르 식당에 모여들었다. 식탁 위에는 빈 그릇만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뮬러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이제 머리 숙여 일용할 양식을 주실 하나님께 식사 기도를 드립시다.” 아이들이 수군대기 시작하였다. “빈 그릇을 놓고 무슨 기도야?” 이 소리를 들은 뮬러는 다시 말했다. “염려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곧 주실 것입니다.” 아이들이 고개를 숙이자 뮬러는 간절히 기도 드렸다. 그 기도가 막 끝나자마자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어떤 낯선 신사가 인부들의 손에 큰 통 몇 개를 들려 들어섰다. 그는 말했다. “뮬러 선생님, 오래 전부터 무엇인가 도와 드리려고 생각했는데, 오늘에야 이것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 통들 속에는 빵, 야채, 고기 등의 음식이 가득 들어 있었다. 빈 접시를 놓고 기도를 드렸던 뮬러의 믿음은 실로 놀라웠다. <책 ‘조지뮬러’ 중에서>

  제가 대학생 때 ‘조지뮬러’ 라는 책을 읽으며 어떻게 하면 이런 놀라운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 부러워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전심으로 드리는 저의 기도에도 신실하게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면서, 조지뮬러처럼 특별한 사람만 응답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기도에는 전능자 하나님에 대한 100%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나름대로의 대안을 가지고 주님과 타협하는 기도가 아니라, 겸손하고 정직한 기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온전히 내어 드리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은 주님의 때에 그 분의 방법으로 응답하십니다. 그것을 체험하면 할수록 우리의 신앙은 더욱 깊어지게 되고 신나는 기도의 참 맛을 알아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올 한 해에 선한목자교회 모든 성도님들의 기도 제목들에 신실하게 응답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역사의 현장에 주인공이 되실 성도 여러분들을 기도의 자리로 초대합니다.  

  
 - 연목사 on 1/2/2021 -

12/27/2020

목회 칼럼

제목: 한 해를 마무리하며

  한 해가 서서히 저물어 갑니다. 지금은 시간이 더디 가는 것 같기도 하지만, 지나간 날을 되돌아보면 시간은 참 빨리도 흐릅니다. 올해 신년예배를 드린 지가 엊그제 같은데, 눈 깜짝 할 사이에 송구영신 예배를 앞두고 있습니다. 인생의 시계가 20살에는 20킬로미터 속도로, 40대에는 40킬로미터 속도로, 60대는 60킬로미터 속도로 달려간다고 합니다. 이처럼 세월이 빨리 달아나는 것 같이 느껴지는 것은 무슨 일유일까요? 나이가 들수록 바쁘게 살아서 일까요, 아니면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더 소중하게 느껴서 일까요? 좌우간 그 무엇으로도 붙잡을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을 생각할 때마다, 순간 순간 무의미하게 보낸 지난 시간들이 그저 아쉽기만 합니다.

 

롱펠로우는 ‘인생찬가’에서 “예술은 길고 세월은 빠른 것, 우리의 심장은 튼튼하고 용감하나, 마치 북과 같이 무덤을 향하여 역시 장송곡을 울리는 것 같구나” 라고 인생에 대해서 표현했습니다. 전도서의 저자는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12:1-2)라고 권고합니다. 여기에 “세월을 아끼라”는 부분을 공동 번역에서는 “여러분에게 주어진 기회를 잘 살리십시오.” 라고 번역합니다. 세상사가 모두 불공평하다 할지라도 하루 24시간은 모든 인간과 만물들에게 공평하게 선사됩니다. 그러나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의 결정은 우리의 몫입니다. 우리가 지난날들을 뒤돌아 볼 때 무의미하게 보낸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후회도 더 크게 됩니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사실은 또 다시 새 해가 밝아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공평한 시간을 선물해 주시고 우리가 다시 그 시간들을 잘 살아내길 바라시며 기다리고 계시다는 뜻이겠지요. 그러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지금까지 지내온 시간들이 모두 허망한 삶의 모습이었다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내일의 시간이 또 다시 공짜로 주어지는 기막힌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입니다.

2020년 한 해, 혹시 코로나로 인해서 아무 것도 제대로 한 것 없이 시간을 보냈다 싶으시다면, 이제 밝아오는 새해 새로운 꿈을 꾸고 새로운 비전을 가지고 힘차게 달려가는 성도님들과 선한목자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여기서 우리가 어떠한 환경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또 다시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능력을 붙드는 것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새 해에 다시 희망찬 꿈을 꾸고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여 일어날 수 있는 힘은 우리의 손을 붙들고 일으키시는 주님에게서만 얻을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한 해 동안 여러 모양으로 힘겹게 살아내시느라 수고가 참 많으셨어요. 밝아오는 새해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공평한 선물을 정말 귀하게 잘 사용하셔서 내년 송구영신예배 때에는 후회가 아니라 주님께 칭찬받고 의의 면류관과 하늘의 상급을 받으시는 놀라운 한 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연목사 on 12/26/2020

12/20/2020

목회 칼럼

제목: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의미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성탄을 기뻐하며 다시 한 번 그 의미를 되짚어 봅니다. 짧은 단어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첫째, 권리포기입니다. 예수님은 높고 높은 하나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낮은 이 땅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 되신 전능하신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일은 당신의 주권을 내려놓으신 일입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지도 않은 작은 개미가 된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말도 못하고, 생각도 못하고, 언제나 도사리는 자연 풍파에 노출되고, 무엇보다 우리를 잡아먹으려는 포식자를 피해 다녀야 할 신세가 될 겁니다. 이처럼 인간이 개미가 되는 일도 놀라운데, 저 우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한낱 앞으로 5분의 삶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권리 포기는 우리 구원의 길을 여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향한 최고의 배려입니다. 그분은 섬김을 받으셔야 할 분이 섬기는 자가 되시고 (막 10:45), 우리와 눈높이를 맞춰 주시고, 상처를 치유하시고, 우리 죄의 질고를 십자가에서 짊어지셨습니다. (롬 5:8)

둘째,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아낌없이 보내주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세상을”은 먼저 우리 개인과, 더 나아가서는 모든 백성을 포함합니다. 하나님은 먼저, ‘나’를 사랑하십니다. 한 선교사님의 간증입니다. 부모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아 자살을 선택하려 했던 그는,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자살할 마음을 접었다고 합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자가, 그 어떤 신이, 나를 사랑해서 자신의 아들을 죽게 할 수 있는가?’ 질문에 자살을 접고, 하나님을 만나 자신의 삶을 드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있는 하나님의 사랑은 이처럼 인생을 바꿉니다. 또한, 공동체인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려운 시기인 지금 전 세계의 백성들에게 사랑을 부어주고 계십니다. 지금 코로나 때문에 모두가 재정적으로 힘든 시기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교회의 헌금과 기업의 기부가 더 많아졌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또한 우리교회가 선교 구제 헌금을 생각보다 많이 드리시는 모습에,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얼마나 감사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아무리 힘든 이 코로나도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그 분의 사랑 때문에 말입니다. 

셋째, 평화입니다. 이 땅에 오신 주님은 사랑을 주셨기에, 우리가 원수를 사랑할 힘을 주셨습니다. 어디나 사랑이 있는 곳에는 평화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분열과 전쟁이 끊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세상에 주님이 계시면 평화가 임합니다. 최근 그렇게 미워했던 그 사람이 시간이 흐르며 성숙하게 되고,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다는 고백은 평화가 임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이요, 사람들 중에는 평화로 오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눅 2:14)


  연목사 on 12/19/2020

12/13/2020

목회 칼럼


제목: 성탄의 주인공, 예수!


   성탄을 맞이하며, 언제부터인가, 아기 예수님의 모습이 주변에서 점점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성탄을 축하하는 카드나 인사말 속에 점점 예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스스로 모습을 감추신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사단의 전략으로 이 성탄의 계절에 예수님의 모습을 지우려 하는 겁니다. 

요즘은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공공장소에서 인사하면 왠지 어색해(?) 합니다. 어떤 이는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는 “특정 종교”의 색깔을 내는 것이며, 종교의 자유를 침해는 것이라 말합니다. 그래서 세상은 이 말 대신 "해피 할러데이!" 라는 말로 장식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빼고, 화려한 장식과 산타클로스가 성탄을 대표하는, 그야말로 주님이 보시기에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또, 언제부터인가 크리스마스카드에 그리스도의 모습이 사라질뿐더러, 그 자리에 가족사진이 등장하기 시작하더니, 이젠 그게 당연한 추세가 되었습니다. 물론 성탄절을 맞아 온 가족이 인사를 드린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겠지만, 무슨 이유도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것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크리스마스의 주인이시고 주인공은 예수님 바로 그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2020년 코로나로 힘들었던 금년에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는 찾아왔습니다. 질병을 통하여 주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너희를 이처럼 사랑하며 기다리고 있단다"고 말씀하시며, 식을 줄 모르는 사랑고백을 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크리스마스는, 언어로 다 표현이 불가능하지만, 인류를 향한 하나님 사랑의 증거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우리들에게 사랑한다는 고백을 하신 귀중한 날입니다. 거절당할 줄 뻔히 아시면서도 말이지요. 요한은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였다" (요1:11)고 그 실상을 말했습니다. 주님은 거절당하셨기에 심한 모멸감과 상처로 심판하실 법 한데, 이 땅에 사는 백성들로부터 보기 좋게 딱지를 받으면서도, 우리를 향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초라한 마구간에, 낮고 낮은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성탄의 참 의미를 뒷전으로 하고 성탄의 화려한 장식의 기쁨만 찾는다면,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지금이야 화려한 성탄의 장식이지만, 철이 지나면 처치곤란의 애물단지가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지난 주 저는 가족들과 오붓한 시간을 갖기 위해, “크리스마스 연대기2”라는 성탄 영화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들 앞에서 마냥 재밌게 그 영화를 볼 수만은 없었습니다. 영화를 보며, ‘우리 아이들이 크리스마스를 생각하면 무엇을 먼저 떠올릴까?’ 제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크리스마스 트리의 장식과 산타의 문화로 물들어가는 요즘, 한번쯤 깊이 생각하며 자성하고 우리 자신을 성찰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이 땅에 오신 주님의 탄생을 기뻐합시다!
그리고 함께 축하합시다! 독생자를 보내신 성부 하나님께 감사드립시다! 메리 메리 크리스마스!


  연목사 on 12/12/2020
 

12/6/2020

목회 칼럼

제목: 섬기러 오신 예수님을 따라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 예수님이 오신 성탄의 계절입니다. 무엇보다 전례 없는 세계적 유행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위기 속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 성탄의 크신 은총이 가득 넘치길 기도합니다. 성탄은 높고 높으신 왕 하나님이 낮고 낮은 이 땅에 오신 놀라운 은혜의 사건입니다. 도대체 이 은혜는 어떤 걸까요? 

한 나라의 대통령이 국민들의 살아가는 형편을 살피기 위해 계급장이 없는 허름한 군복을 입고 신분을 숨긴 채 민정을 시찰하였습니다. 어느 검문소를 지나게 되었는데, 그곳의 지휘관이자 연대장이었던 대령이 이 사람을 수상하게 여기고 거만하게 심문했습니다. 

"그대는 어찌하여 감히 군복에 계급장도 달지 않고 다니나? 계급이 무엇인가?"  “...” 더욱 궁금해진 대령이 다그쳐 물었습니다. "예비역 하사관인가?" "아니오. " "아니면 장교?" "아니오." "그렇다면 소령쯤 되는가?" "그보다 더." "그럼 나와 동급이요?" "아닐세." "이런, 결례를 했습니다. 장군님을 몰라보고…." "그보다 위일세." "그, 그렇다면 국방부장관이십니까?" "좀 더 분발하게." "아이고,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각하! 용서해 주십시오."

그 대령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인자한 대통령은 그 경솔한 대령을 일으켜 세우며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함부로 대하지 말고 겸손히 섬기는 자세로 봉사하라고 충고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성탄을 맞이하는 우리는, 지극히 높은 하나님이 지극히 낮은 몸으로 이 땅에 오신 주님을 높이며 찬양하고 경배해야 합니다. 이처럼 높고 높은 분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죄인을 섬기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아 이웃을 섬겨야 하는 이 시대에 부름 받은 종입니다. 이 뜻 깊은 성탄의 절기에 섬김의 깊은 의미를 꼭 돌아봅시다! 원래 섬김은 지체가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에게 하는 봉사의 행동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정반대로 지극히 높은 분이 지극히 낮은 자를 섬기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섬긴 것입니다. 마치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보살피기 위해서 어머니가 모든 것을 헌신한 것과 같습니다. 

힘든 시기 가운데에도, 성도님들이 주위에 어려운 이웃을 섬기는 온정의 손길을 뻗어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매서운 추위만큼이나 질병으로 꽁꽁 얼어붙은 상황이지만, 우리교회가 예수님의 섬김을 실천하기 위해 노숙자들과 선원들에게 사랑을 나눠주시니 말입니다. 이들 뿐만 아니라 우리 주위에는 물질적인 문제나 육신적, 정신적인 고통으로 잠 못 이루는 이웃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주님은 이런 분들에게 제일 먼저 찾아가실 것입니다. 계속해서 우리교회는 주님처럼 더욱 겸손히 허리를 동이고 이 어려운 시기에 나라와 민족을 힘써 섬겨야 하겠습니다. 성탄의 크신 은총과 위로가 온 교회와 가정에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연목사 on 12/6/2020

11/29/2020

목회 칼럼

제목: 대강절과 사랑 나눔


   오늘부터 4주 간의 ‘대강절’(Advent)이 시작됩니다. 대강절은 ‘강림절’ 또는 ‘대림절’이라고도 합니다. “오심” 또는 “방문”을 의미하는 라틴어 단어 adventus에서 비롯된 대강절의 절기는 ‘예수님의 강림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올해는 성탄절 4주 전인 오늘부터 시작하여 성탄절 이브(12/24)에 끝납니다. 이 절기는 기독교인들에게 교회력이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대강절 첫째 주일이 신년 첫 주가 되는 셈입니다. 

대강절 동안 우리는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대하며 준비합니다. 우리는 구세주를 향한 갈망, 용서, 구원 및 새로운 시작에 대한 유대인들의 갈망을 역사를 통해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절기 동안, 베들레헴에 초라한 마구간에서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도 하고, 또한 그의 탄생으로서 약속된 모든 것의 성취로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립니다. 사람들은 단 하루 만 성탄절로 축하하는 데 익숙하지만, 성탄절 절기는 원래, 12월 24일(성탄절 이브)의 일몰에서 주현절(1월 6일)까지 계속됩니다. 이것은 때때로 “12일 간의 성탄절"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일부 교회 강단에는 이 절기동안 4개의 보라색 초를 두고 한 주에 하나씩 켜곤 하는데, 이는 이 땅에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대강절이 끝난 성탄절에는 보라색 양초 4개와 그 가운데 있는 하얀색 양초를 켜서 세상에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우리는 이 절기에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할 뿐만 아니라, 재림하실 주님을 기다리며 주님 앞에 부끄럽게 않게 살도록 경건에 힘써야 합니다. 또한 세상의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과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을 통한 구원을 증언하는 일에 힘써야 하며,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는 일에도 더욱 힘써야 하겠습니다. 

매년 대강절을 맞이하며 우리교회는, 각 가정마다 선물 박스를 만들어, “Tacoma Seafarer's Center” (T.S.C., Led by Rev. Paul Peterson)와 “한국선원선교회”(최원종 목사)를 통해, 타코마에 들어오는 세계 각국의 주님을 알지 못하는 선원들에게 선물을 보내 주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각 가정에서 선물박스를 마련하는 하는 것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선원선교회 같은 경우는, 각 가정이 박스를 준비하지 않고, 그 비용을 선교회에 보내면 직접 준비를 해서 나눠준다고 합니다. (한 박스당 20불정도, 보통 한 척에 선원 20명 승선) 더불어, 연말 추운 날씨에 씻지 못했던 노숙자들을 호텔에 머물게 하는 “둥지선교회”(이경호 목사) 사역에도 우리가 헌금으로 동참하길 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코로나의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사랑을 나누는 일에 우리는 힘써야 합니다.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대강절 기간 동안(오늘~12/13) 선원들 선물박스를 준비해 주시고, 선교헌금으로 마음을 모아 주시길 바랍니다. 우리를 통해 주님의 사랑이 모든 선원들과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연목사 on 11/28/2020

11/22/2020

목회 칼럼

제목: 추수감사절의 유래


   추수감사절의 근대적 유래는 북미 대륙을 개척한 청교도들(Pilgrims)로부터 옵니다. 그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영국에서 미지의 북미 대륙으로 온 경건한 자들이었습니다. 영국 헨리 8세와 제임스 1세와 찰스 1세 때 이어진 종교 박해로, 그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영국을 떠나 대서양을 건너 미 대륙으로 왔습니다. 1620년 8월 5일(지금 달력으로 8월 15일) 영국 남해안 플리머스 항구에서 스피드웰과 메이플라워 호에 탔습니다. 처음에는 배가 고장 나 물이 새, 다시 귀항을 했으나, 한 달 후인 1620년 9월 6일 결국 메이플라워호에만 선원들과 102명의 청교도들이 승선하여, 현재의 중부지방 버지니아를 목적지로 삼았습니다. 그 때 남자 78명과 여자 24명으로 총 102명이었습니다.

그들은 그해 11월 11일 버지니아 대신 미국 동북부 메사추세츠 케이퍼 카드(Cape Cod) 해안가에 도착했습니다. 5일 동안 주위를 답사한 후, 11월 16일 현재의 플리머스(Plymouth)에 정착했습니다. 63일간 3,400마일(5,440km)의 멀고도 긴 항해였습니다. 토요일에 도착했고, 다음 날인 주일을 지키기 위해 길고도 지루하고도 위험한 항해를 거쳤음에도 예배를 위해 배 안에서 보냈습니다. 그들은 주로 시편 찬송을 많이 불렀으며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11월 중순 도착한 그들은 강풍과 눈보라 치는 혹독한 추위, 질병과 식량 부족, 원주민들의 냉대, 들짐승들의 위험, 거할 곳 하나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그해 겨울, 2~3개월 내 102명 중 절반 이상이 사망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굳건한 믿음으로 버텼습니다. 생존자 대부분은 지치고 건강이 쇠약해져 질병으로 신음했으나, 건장한 자들이 땔감을 마련하고, 침실을 만들고, 병자들을 간호하며, 병자들과 노약자들의 옷을 빨아 입히고, 칠면조와 사슴 등을 사냥하며 음식을 조달했습니다. 봄날이 찾아오자, 그들은 땅을 개간하고 씨를 뿌리고 기대 이상의 추수를 하게 되어 눈물로 감사했습니다. 

다음 해인 1661년 가을, 하나님께 첫 추수감사절 예배를, 추수한 첫 곡식들과 채소들 중 최고의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들은 기도 중에, "우리는 대서양을 건너와 여러 친구들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첫 열매를 드립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첫 날 주일에는 온 종일 기도하고, 찬송 부르고, 말씀을 묵상했고, 둘째 날에는 칠면조 요리, 감자, 옥수수 요리 등을 만들어 서로 나눠먹고, 셋째 날에는 인디언 추장들을 초대해 음식을 나눠 먹었습니다. 그 보답으로 원주민 인디언들은 칠면조 구운 요리와 호박파이를 가져와 같이 친교를 나눴습니다. 그것이 유래가 되어 추수감사절에는 칠면조 고기와 호박 파이를 나눠먹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먼저 세운 것은 통나무들을 잘라 만든 교회였고 학교였습니다. 그 다음에야 자신들의 집을 마련했습니다. 이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지금 이렇게 풍성한 추수 감사 주일 예배를 드립니다. 북아메리카의 개척자이자 믿음의 선조인 청교도들의 정신을 본받아, 어려운 시기이지만 늘 감사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공동체가 됩시다!


  연목사 on 11/21/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