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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0/2019

목회 칼럼 (60): 행복한 삶으로의 초대


   지난 주 <사랑의 동산>을 찬양으로 섬기며, 참 행복을 느꼈습니다. 모든 참가자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말이죠. 모든 분들의 웃음꽃 가득한 모습이 어찌나 귀하던지, 어느새 감격의 눈물이 주르르 흐르더군요! 누군가의 웃음 가득하며 행복해하는 모습은 돈으로 절대 살 수 없는 가치가 있습니다. 이것은 돈으로 가늠할 수 없습니다. 덕지덕지 화장으로 치장된 겉모습보다 훨씬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또한 이러한 모습은 영향력이 있습니다. 자꾸 보고 싶습니다. 주변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고, 환경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깨달은 자는 이렇게 기쁨 가득한 자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될 때, 구원의 감격을 통해 행복을 느낍니다. 인생의 목적이 생기고, 삶의 이유를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노력이나 물질로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얻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허락하신 하나님 또한 우리가 기뻐 뛸 때 함께 기뻐하십니다. 떠난 아들 탕자가 돌아오는 모습을 본 아버지는 기뻐 뛰며 아들을 맞이하며 파티를 열었습니다. 그게 바로 아버지 되신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저는 요즘 하나님의 기쁨이 어떠실지 대략 알 것 같습니다. 목회자로서 한 영혼이 주께 돌아오는 기쁨을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간절한 기도 가운데 하나님은 우리 교우들에게 구원의 감격을 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닮아 성장하고 변화하고 계십니다. 어떤 의사 장로님이 한 목회자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목사님, 저는 목사님이 부럽습니다. 그저 저는 육신을 치료하는 육신의 의사이지만, 목사님은 영혼을 치료하는 영혼의 의사잖아요!” 이 장로님의 말대로 저는 영혼을 살리는 의사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값진 사명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교회의 모든 교우들을 이 행복한 구원의 삶으로 초대합니다. 하나님을 만나 영원한 소망의 구원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 모두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누구든지 마음 문을 활짝 열고 문을 열면, 주님은 그와 더불어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축복과 행복의 삶으로 함께 가지 않으시렵니까?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계 3:20)


연목사 on 11/10/2019

11/3/2019

목회 칼럼 (59): 12월 침례식을 앞두고...


   요즘 한국의 십대, 이십대가 쓰는 줄임말은 쉽게 이해하기가 힘이 듭니다. “남아공”( 남아서 공부나 해!), “낄끼빠빠”(낄 때 끼로 빠질 때 빠져라!), “갈비(갈수록 비호감) 등의 말들이 그렇습니다. 이렇게 약식으로 가는 모습을 보면서, 말에 대한 기준과 가치가 떨어지는 것 같아 염려가 됩니다. 우리의 신앙에도 이처럼 은연 중 ‘간소화’된 것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침례>가 <세례>로 된 것이 그렇습니다. 


   12월 침례식을 앞두고, 성도 여러분 중에 ‘왜 우리교회는 다른 교회처럼 세례가 아닌 침례를 주나?’ 궁금해 하신 분들이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성례>는 성찬식과 침례식이 있습니다. 이 중 침례는 일생에 한 번하는 성례인데, 물속에 잠기여, ‘나의 죄 된 자아의 죽음을 선포하고, 물 속에서 나와 새생명을 얻었다’는 고백의 의미가 있습니다. 사실 성경이 말하는 침례(Baptism)는, “물속에 완전히 잠기다”라는 뜻의 헬라어, “밥티즈마”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간소화 된 것이 세례(Sprinkling Baptism, 물을 이마에 뿌리는 의식)입니다. 이렇게 간소화 된 이유는,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 로마 정부의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핍박이 심해졌습니다. 그들은 땅속 지하로 숨어 예배의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땅속에서 물을 구하기가 어려워 침례의식을 행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적은 물로 침례를 하게 되었고, 그것이 세례가 된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속한 남침례교단(Southern Baptist Convention)은 이처럼 세례로 간소화 되었기에 원래의 침례를 고수하는 <복음주의 교단>입니다. 교단의 역사를 보면, 이것을 지키기 위해 믿음의 선진들(Anabaptist, 재침례파)의 수많은 희생도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다른 교단이나 교회들도 성경의 참 뜻을 알고, 침례를 행하는 교회가 많이 있습니다. 한국의 온누리 교회를 비롯하여, 가까이는 시애틀 형제교회가 침례를 행하기도 합니다.


   침례는 철저히 “믿는 자의 침례”(Believer's Baptism)입니다. 우리는 절대적으로 개인의 믿음의 고백을 근거하여 침례를 받습니다. 절대 누가 대신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로 고백한 사람이 침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꼭 침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 못 박힌 강도는 침례 받지 않았지만, 예수님의 말씀처럼, 낙원(천국)에 거할 수 있었습니다.(눅 23:43) 하지만 이것은 예수님의 명령이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는 이것을 통해 <믿음의 결단>을 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삶의 주인임을 고백하고 순종하겠다는 표입니다. 영적인 선포입니다. 그래서 새롭게 태어남을 선포(고후5:17)하는 침례는 그 무엇보다 기쁜 순간입니다. 아직 침례(혹은 세례)로 믿음을 고백하지 못한 성도들은 이번 12월 8일에 있을 성례인 침례를 통해 믿음의 고백을 하시도록 권면합니다. 그리고 만약 세례를 받으셨지만, 우리교회 가족이 되셨기에, 침례 받길 원하신다면 환영입니다. 우리교회가 진정한 믿음의 고백인 침례를 통해, 점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믿음의 성도들의 숫자가 커져 나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길 기도합니다. 


연목사 on 11/3/2019

10/27/2019

목회 칼럼 (58): No 할로윈데이, but 종교개혁의 날


   매년 10월 31일은 Halloween Day입니다. 이 때가 되면, 놀이동산, Malls, Markets, 호텔뿐만 아니라 공공기관까지 경제적인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대대적인 마케팅을 합니다. 아이들은 귀신 혹은 여러 캐릭터 복장을 하고, 각 집을 방문하며 대표적인 놀이인 “Trick-or-Treat”를 합니다. 이제, 미국의 큰 명절인 Thanksgiving 과 Christmas 와 함께, Halloween Day 는 미국에서 빼놓을 수 없는 큰 문화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Halloween 문화는 비성경적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이 실제를 분명히 알고 경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문화를 성경적으로 잘 바꿔나가는 게 교회(부모)의 역할이며, 무엇보다 이 문화 속에 노출된 우리 아이들을 지켜야 하겠습니다. 


    Halloween 에서 Hallow 는 Holy (거룩한)의 고전어입니다. 거기에 Evening (밤)이라는 단어가 붙어 Halloween 이 된 것입니다. ‘거룩한 전야’라는 뜻이 됩니다. 지금의 Halloween 문화는 영국의 켈트족 문화의 영향 때문입니다. 켈트족은 아일랜드에 정착한 민족이며, 주술의 문화가 있습니다. 흔히 알고 있는 헤리포터, 반지의 제왕 등이 켈트족의 문화에서 온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신년은 11월 1일이고, 그 전날 밤인 10월 31일은 한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이날이 되면 그들은, “태양의 기운이 다하여 이승과 저승을 구별하는 막이 얇아져 악령들이 그 막을 뚫고 세상을 찾아와 사람들을 괴롭힌다”고 봅니다. 그래서 직접 귀신 복장을 하고 집집마다 음식을 달라고 하는 전통을 만들었고, 이것이 현재의 놀이인 “Trick-or-Treat”가 된 것입니다. 그 후, 유럽의 기독교인들과 켈트인들의 전통이 혼합되었고, 이것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전해진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적이지 않은 이유는 이날의 문화 속에 숨겨진 사단의 역사 때문입니다. 이 사단의 역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먹을 것으로 악령을 달래서 괴롭히지 못하게 하거나, 모두가 직접 악령이 되어 돌아다니게 하는 역사입니다. 이를 통해 “악령을 친숙의 대상”으로 삼는 흉악한 사단의 음모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귀신을 어떻게 대하셨나요? 귀신을 꾸짖으셨습니다. 쫓아내셨습니다. 우리에게 귀신은 함께 하거나 즐기는 대상이 아닙니다. 성경은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날의 문화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문화입니다.


   사실 10월 31일은 기독교의 역사에 중요한 <종교개혁의 날>입니다. 우리에게 있어 종교개혁은 지금의 복음적인 교회가 세워진 뜻 깊은 날입니다. 종교개혁 전에, 부패한 캐톨릭은 면죄부를 팔아서 죄를 면해주고 돈을 받아 폭리를 취했습니다. 이 외에도 모든 비성경적인 부분을 타파한 날이 종교개혁일입니다. 이 날을 위해 수많은 자들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이 소중한 날에 사단의 전략에 빠지지 않고, 그것을 경계하고 바꿔가는 것은 우리의 의무입니다. 우리교회가 아직 미약하여 특별한 시간을 개취하는 건 아직 무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날에는 이 문화를 지양하고, 가정의 귀한 추억을 만들도록 주변의 복음적인 지역교회(타코마 제일 침례교회 등)를 가시도록 권면합니다. 각 교회에서는 세상의 문화보다 더 다양한 활동과 놀이(가족사진, 음식, 미끄럼 등)를 제공하되, 악령의 문화는 배제합니다. 부모님(성도님)들의 바른 인도로 인해 우리 모든 아이들 안에 오직 그리스도만 계시길 기도합니다.


연목사 on 10/27/2019

10/20/2019

목회 칼럼 (57):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참 모습


   요즘 조국 땅의 사회, 정치, 외교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은 정말 편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고, 사실을 가장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시대가 요즘입니다. 이런 세상 속에 무엇이 진리인지 판단하기 너무 어렵기에 우리의 고민은 더욱 깊어져 갑니다. 


   얼마 전, 한국의 대통령은 검찰개혁을 고수하며, 검찰은 검찰의 일을 하면 되고, 법무부는 법무부의 일을 하면 된다며, 장관 후보자의 아내와 자녀의 비리를 수사하고 있는 상황에서 장관 임명을 단행했습니다. 그의 단행은 순수한 행보일까요, 아니면 진실을 감추는 괴변일까요? 그리고는 결국 임명받은 장관이 사퇴하는 상황까지 왔습니다. 모든 일이 어떤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태연하게 기자회견을 하는 저들을 보면, 저 속에 어떤 속내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국민들은 그들의 주장에 영향을 받아, 한 쪽은 검찰 개혁, 한 쪽은 현 정권 타도를 외치고 있습니다. 각자의 입장에 서서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과연 사건의 내막을 얼마나 알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솔직히 순수한 국민이 그냥 이용만 당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듭니다. 


   최근에는, 어떤 목사는 자기가 인도하는 정권 타도 대회에 불참하면, “생명책”에서 지우겠다고 말하고, 성도는 거기에 “아멘”하고 따랐습니다. 그야말로 목적을 위해서라면 막 말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이라도 된 모양새입니다. 그리고는 조크라고 합니다. 한번 말한 것을 그토록 쉽게 주어 담으려 합니다. 변칙적으로 세습을 한 어떤 교회는 총회가 세습을 인정해줬다고, 강단에서 자신들이 사단에게 이겼다며 좋아합니다. 또 강남의 한 대형교회는 세상 법정에서 판결이 났는데도 불구하고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안내문을 발표합니다. 이처럼 교회 안에도 영적으로 죽은 기운이 가득합니다.
 

 이와 같은 소식이 우리가 일상 듣는 뉴스입니다. 원망과 울분이 나옵니다. 그래서 진리가 드러나도록 기도해야 하며, 공공을 향해 진리를 외쳐야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보아야 합니다. 그들을 판단하는 우리 각자의 모습 또한 결코 당당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크던 작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말이든 쉽게 내뱉고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거짓말을 해도 괜찮고,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괜찮다고 정당화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나는 저들보다 낫다’며 뭐라도 된 것 인양 목을 치켜세우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보시기에는 다 똑같은 죄인입니다. 우리는 혼란이 도사리는 마지막 때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한순간이라도 내가 진리의 편에 서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며, 진실한 마음, 순결한 마음을 지키며 살아야겠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교회를 위해, 나라와 민족을 위해 회개하며 기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시 51:6,7)   


연목사 on 10/20/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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