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3/2020

제목: 기도가 쉬웠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제 이름은 로버트에요. 남동생이 갖고 싶어요.
엄마는 아빠에게 부탁하라고 하고 아빠는 하나님한테 부탁하래요.
하나님은 하실 수 있죠? 하나님, 파이팅!” (Robert)

“사랑하는 하나님, 오른쪽 뺨을 맞으면 왼쪽 뺨을 대라는 건 알겠어요.
그런데 하나님, 여동생이 눈을 찌르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Teresa)

“하나님, 지난번에 쓴 편지 기억하세요? 제가 약속한 것은 다 지켰거든요.
그런데 왜 하나님은 아직도 준다던 조랑말을 안 보내시는 거예요?” (Louis)

“하나님, 우리 옆집 사람들은 맨날 소리를 지르며 싸움만 해요.
아주 사이가 좋은 친구끼리만 결혼하게 해 주세요!” (Roth)

“하나님, 눈이 너무 많이 와서 학교에 못 갔던 날 있잖아요?
기억하세요? 한 번만 더 그랬으면 좋겠어요.” (John)

미국의 어느 주일학교 어린아이들이 손으로 기록한 기도문이랍니다. 이 기도문들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너무 거룩하고, 고상한 언어, 고급 진 언어, 계획된 언어만 사용하려 하지 않나?’ 기도가 어렵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기도는 의외로 쉽습니다. 이 아이들처럼 그냥 느끼고 생각하는 바를 아버지께 고백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 진솔한 기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듣는 이들에게 은혜를 끼칩니다. 다윗의 기도가 그러했습니다. 적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마음속에 있는 모든 감정, 억울함, 속상함, 기쁨, 슬픔 등... 모든 것들을 드러내었습니다. 그 기도의 내용들이 바로 시편의 노래들입니다. 

교우들에게 대표기도를 부탁드리면, 기도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많은 분들이 계십니다. 그리고 공적인 자리에서 기도를 부탁드리면, 기도해야 하는 두려움(?) 때문에 당황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도는 쉽습니다. 있는 그대로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오히려 형식에 매인 기도, 포장하는 기도는 하나님에게만 식상한 것이 아니라 듣는 이들에게도 식상합니다. 마치 세리의 기도가 우리의 영혼을 울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기도가 쉬웠으면 좋겠습니다. 기도의 즐거움을 회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라" (히 4:16)

 

연목사 on 9/13/2020

9/6/2020

제목: 성품 설교를 준비하면서...


   가을이 돌아왔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해졌습니다. 문득 크리스마스 계절이 생각납니다. 향기로운 시나몬 향, 금빛 솔방울, 빨간 포인세티야 잎, 울긋불긋 장식들, 그리고 반짝이는 트리 등의 성탄 데코레이션들... 이들은 성탄절을 성탄절답게 꾸며주는 장식들입니다. 아무리 낭만 제로인 상남자들이라도 크리스마스를 꾸며주는 데코레이션은 그들의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그래서 성탄 데코레이션은 성탄절 준비를 완성하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을 완성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성품입니다. 주일 설교로 성품 시리즈를 준비하면서 성품에 대하여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첫째, 크리스챤의 성품은 크리스챤을 크리스챤답게 합니다. 거리의 성탄 데코레이션이 성탄절이 오고 있음을 드러내 듯, 성품은 믿음의 완성이자, 예수님을 나타내는 거울입니다. 내가 어떤 믿음을 가졌느냐가 우리 각자의 성품을 통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거울을 보면 현재의 우리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현재의 성품은 내 진짜 신앙의 모습을 나타내는 영적 거울입니다. 함께 사는 가족들에게 성품은 더욱 확실하게 드러납니다. 배우자 혹은 자녀들에게 비춰지는 우리 각자의 모습이 현재의 진짜 성품입니다. 이찬수 목사님의 설교 중, 그분의 간절한 소명을 듣고, 저 또한 동일한 소명의 다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육신의 삶을 다하고 이 땅을 떠났을 때, 사모님과 자녀들에게 “훌륭한 남편이자, 존경받는 아버지로 남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가까이 살았던 그들에게 훌륭한 남편이자 아버지로 남았다면 그 사람의 성품이야말로 훌륭한 성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모두가, 가족뿐만 아니라 주변 지인에게 존경받는 크리스챤으로 남길 기도합니다.

둘째, 크라스챤의 성품은 준비되는 것입니다. 프로 운동선수가 무한 반복의 훈련을 통해 실전을 준비하듯이, 우리는 성품을 준비하고 훈련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고후 2:15)요, 편지(고후 3:3)입니다. 향기를 뿜어내고, 편지가 되기 위해, 이왕이면 프로 크리스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단은 지금도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에서 멀어지고, 망가지고, 왜곡된 성품을 갖도록 일하고 있습니다. 이 익숙한 성품(?)에서 훈련된 성품(예수님의 성품)을 갖는 방법은 우리를 훈련하는 것입니다. 아래의 말씀이 우리교회 모두의 성품 훈련의 원동력이 되어, 모든 이들에게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향기요, 편지가 되길 축복합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롬 6:11-13) 


  연목사 on 9/6/2020

8/30/2020

제목: 사랑과 선행으로 격려하여 하나 된 교회됩시다!


   깍지를 끼고 두 손을 맞잡으면, 하나 된 양손을 쉽게 분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엄지, 검지, 중지, 약지, 소지의 각각 손가락 맞부딪히면 절대 합칠 수가 없습니다. 성격이 비슷한 두 사람이 부딪히면 연합 될 수가 없는 이치입니다. 하지만 각각의 손가락을 사이사이에 끼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그 연합된 양손은 아무리 양쪽에서 잡아당겨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잡아당기려 하면 할수록 더욱 하나 된 깍지가 됩니다. 이것은 부부가 하나 될 때를 말합니다. 이것은 두 공동체인, 둘이 만나 하나 된 부부 사이의 건강한 관계와, 하나 된 교회의 모습으로 설명되기도 합니다.

우리교회가 점점 바빠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이렇게 바빠지고 풍성해지니 목회자로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습니다. 먼저 새로 구입한 건물 내부를 공사하고 있습니다. 공사를 위해서 이해원 장로님이 애쓰고 계십니다. 장로님은 전체를 감독하시며, 몸을 아끼지 않고 손수 공사에 참여하시며 교회를 섬기고 계십니다. 또한 장로님과 함께 일하는 인부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한편 장로님과 형제님들 힘내시라고 매일 아침, 점심을 정성스레 섬겨주시는 여 성도님들이 계십니다. 그래서 매 끼니에 저 또한 덩달아 섬김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관심과 사랑에 장로님과 인부들이 더욱 힘을 내어 교회를 세워가고 계십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계속 전도되어 찾아오는 새로운 아이들이 있기에, 전도사님과 성도님들이 우리 아이들을 각각 나이별로 가르치기 위한 보완으로 분주합니다. 또한 계속 늘어나는 아이들 모두가 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말씀을 배울 수 있게 교실을 꾸미고 청소하고 계십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 10:24,25)

위 말씀처럼 서로 돌아보아 당신의 교회가 세워져가니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지,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무엇보다 사랑과 선행으로 격려하는 모습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니다. 이런 격려가 있기에 교회의 하나 됨은 더욱 견고해집니다. 교회가 덩치가 크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작지만 복음으로 하나 되어 격려함이 중요합니다. 많은 신학자들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교회는, <작지만 복음으로 무장되어 하나 된 교회>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런 교회야말로 마지막 시대에 주님 오실 길을 예비하는 교회라 믿습니다.

계속해서 사랑과 선행으로 격려를 놓지 않는 우리교회가 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옛 자아가 무너지고, 하나 됨을 향해 달려가도록 복음을 허락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셔서 본을 보이셨습니다. 외적인 성장보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성장하여 복음의 능력을 소유한 교회로 성장하길 기도합니다.  


  연목사 on 8/30/2020

8/23/2020

제목: 객기 아닌 진정한 용기


   초등학교 1학년 때 태권도를 배웠습니다. 도장의 아이들은 각 도장에서 1급에서 8급 심사를 통해 올라간 후, 국기원에 심사를 받아 1품(성인은 1단) 유단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미성년자이기에, 유단자가 되면 “품띠”(빨강과 검정색이 섞인 허리띠)를 받았습니다. 2학년이 지날 무렵, 저 또한 품띠를 받았습니다. 저는 좀 배웠다고 우쭐댔고, 친구들은 제가 싸움을 잘한다고 대접 아닌 대접을 해주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작디작은 손과 발로 얼마나 우스운 모습이었을까 싶습니다. 태권도 좀 할 줄 안다고 기분 나쁘게 한 1살 형한테도 주먹을 휘둘렀습니다. 태권도가 저에게 용기(?)를 가져다 준 샘이죠. 한 대 얻어맞고 우는 형을 보며 “까불지 마!”라고 말하며 엄포를 크게 놓았습니다. 이렇게 태권도는 저에게 대단한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1, 2년이 지날 무렵, 용기백배한 저의 모습이 한 순간에 사라진 계기가 있었습니다. 저의 괴롭힘 아닌 괴롭힘에, 동네에 한 살 동생이 제 코에 주먹 펀치를 날렸고, 저는 쌍코피가 터지고, 그 동생에게 KO를 당했습니다. 아이들의 싸움은 울면 끝나는 것인데, 저는 쌍코피에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이 모든 상황이 낯이 뜨거울 정도로 우습고 민망한 순간입니다. 

“객기 부리지 마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릴 적 제가 가지고 있던 것은, 용기가 아니라, 객기였습니다. 세상에서의 용기는 대부분 객기로 마무리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 속에 사람들은, 뭔가를 많이 알고 학벌을 소유할 때, 권력과 같은 능력을 소유할 때, 많은 이들의 인기를 얻을 때 용기를 냅니다. 하지만 이 용기는 계속 가지 못합니다. 얼마 전 안타깝게 자살을 선택한 정치인도 용기가 대단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용기는 사회적 학벌과 최선을 다하는 성실로 무장된 힘이었습니다. 하지만 인권 운동가이자 시장으로서 당면한 감당할 수 없는 문제 때문에 무너졌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인정하는 용기가 있었다면, 시간이 지나 그 용기가 빛을 발했을지도 몰랐을 텐데, 결국 그의 용기는 진정한 용기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용기는 어디서 올까요? 그것은 하나님께 오고, 하나님으로부터 마무리 됩니다. 우리가 용기를 낼 수 있을 때는 어려움 가운데 전진할 수 있는 힘을 발견할 때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용기는 완전해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전진하여도, 발견한 힘의 한계를 느낄 때, 중도하차 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정치인처럼 말입니다. 용기를 낼 때 중요한 것은, ‘끝까지 용기를 낼 수 있는 힘을 붙들었느냐’에 있습니다. 정녕 그 힘이 실패할 수 없는 힘이 될 때 그 용기는 진정한 용기로 마무리 되는 것이지요. 세상에 이러한 힘은 없습니다. 이 힘은 전능하신 하나님 외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힘은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의 힘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 되시고, 시작과 끝이 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의 과정에 온전히 거할 때 우리의 용기가 참 용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진정한 용기는 믿음에서 옵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때 옵니다. 태권도 좀 배웠다고, 주먹질 하고, 발길질하는 용기, 이와 같은 세상의 객기는, 한순간에 사라지는 철부지 어린아이의 모습일 뿐입니다. 적군의 포로가 되었지만 끝까지 주군을 향한 충성으로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는 장수들 기백 또한 한계가 있는 용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진정한 용기는 다윗처럼, 시작과 끝에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할 때 옵니다. 골리앗 앞에 선 다윗의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되어 진정으로 용기 있는 삶을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삼상 17:45) 


  연목사 on 8/23/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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